나의 카지노 인생 2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매일 사무실로 걸려오는 수십 통의 은행 상환 독촉 전화에, 이제는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치마저 느껴졌다.
사무실 전화벨 소리가 두려웠다.
능력 있는 과장에서 갑자기 문제아가 된 기분이었다.
고심 끝에 드디어 카지노가 떠올랐다.
지난 10년간 연승 행진을 했던 그곳. 바로 거기였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자책하며 카지노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했다.(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던가!) 달러 통장을 해지하니 약 7만 불이 되었다.
800원 하던 환율이 거의 1200원까지 올랐다. 은행 직원은 한 달 정도만 더 버티면 1400원까지 오를 텐데 기다려보라고 했지만, 단 하루도 지옥 같았던 나는 그 돈을 모두 찾아버렸다.
그 돈으로 조금이라도 빚을 갚았어야 했다.
외환관리법 때문에 만 불 이상은 가지고 나갈 수도 없는데. 혼자 머리를 굴렸다. 지금까지 나의 투자금은 3천에서 5천만 원 정도였다.
물론 2천만 원 이상을 바꿔 본 적도 없이 100% 승리했으니, 2만 불 정도면 한 번 갈 때마다 최소 5천만 원은 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두세 번 다녀오면 웬만한 빚은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어떻게 돈을 가지고 나가느냐였다.
어쨌든 카지노에서 해답을 찾은 나는 출장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다시 회사 생활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IMF로 달러 가치가 높아지자 회사에서도 수출에 더욱 집중했다.
바이어들과 매일 전화로 연락하며 계약 성사를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드디어 출장 계획이 잡혔다.
한 달 동안 필리핀 출장 2번, 미국 출장 1번. 출장 결재를 올리자 사장과 전무 모두 기대한다며 잘 해보라고 격려했다.
죄책감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일도 열심히 하면 되지'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출장 기간 동안 은행에서 회사로, 회사에서 연락이 안 되면 집으로 전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각 은행 대출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장 중이니 다녀오면 갚겠다고 제발 연락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더니, 엊그제 돈 빌려달라고 아우성치던 은행이 이제는 연락도 하지 말라니.
공항에 도착하니 세관 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2만 불을 어떻게 가지고 나가지?' 머리를 굴리다 화장실로 가서 구두 한 짝씩에 5천 불씩 깔고, 나머지 만 불은 그냥 지갑에 넣었다.
다행히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이제 마음이 놓였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 편안한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 8시 비행기를 탔으니, 오후에는 곧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다.
3박 4일 동안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야 카지노에 갈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없이 일했다.
저녁 식사 접대는 모두 취소해 버렸다. 그 시간에 카지노에서 돈을 딸 생각뿐이었다. 첫날부터 4천 불을 잃었다.
밤새도록 했는데도. 새벽 5시가 되자 어쩔 수 없이 카지노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잠을 억지로 참았다.
이동하는 동안 현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불편한 기색도 없이 잠만 잤다.
코까지 골면서.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밤이 찾아왔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다시 카지노로 향했다.
오늘도 6천 불을 잃었다. 돈을 잃을 때는 만 불이 내 4개월 치 월급이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잠 한숨 못 자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체력의 한계였을까, 상담 중에 깜빡 졸기도 했다. 어쨌든 이번 출장으로 약 30만 불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할 일은 한 셈이었다.
마지막 밤이니, 오늘은 빼도 박도 못 하고 저녁 접대를 받아야 했다.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저녁만 간단히 하고 카지노로 향했다.
저녁 9시, 내일 12시 비행기이니 약 12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이제 일은 잊고 카지노에 모든 것을 걸기로 다짐하며 카지노에 들어섰다. 오늘은 시간이 있으니 좀 차분하게 해야지.
몇 년 동안 카지노에서 승승장구했던 덕분에 웬만한 딜러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까지 있을 정도였다. 내 이름은 칼(KAL)이었다.
코리안 에어가 후원하는 도박사라는 뜻으로 딜러들이 우스갯소리로 부르던 별명이 이제는 공식 명칭처럼 굳어졌다.
승부를 보려면 달러 게임을 해야 하는데, 만 불로는 최소 베팅을 열 번밖에 할 수 없었다.
이틀 동안 잃었던 돈이 너무 아쉬웠다.
일단 밖에서 만 불 정도를 빌려 2만 불로 VIP 룸에서 승부를 보기로 마음먹고, 일반 테이블(10만 원에서 50만 원이 최고 베팅 금액인 테이블)에서 약 8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만 불 정도 되는 칩을 얻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2시. 서둘러야 한다.
VIP 룸은 썰렁했다. 큰 테이블에는 처음 보는 중국인 한 명만 게임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작은 테이블에 있었다.
중국인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게임 기록을 살펴보았다.
완벽한 그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카지노에서 바카라 고수로 통하고 있었다.
내가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늘 대여섯 명의 구경꾼과 카지노 거지(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당시 실제로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양해 바랍니다)들이 내 뒤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도 없고 그 중국인과 나, 단둘뿐이었다.
보통 큰 테이블에서는 사람들끼리 편을 먹고 싸우는 경우가 많다.
서로 카드를 쪼개려고 하고, 상대방이 잃어야 내가 돈을 딴다는 착각 때문에 딜러와 싸우는 것을 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둘 중 하나는 망하기 십상이다. 나는 그 중국인에게 카드 리셋을 하고 다시 하자고 제안했다.
완벽한 그림이라고 말하자 중국인은 흔쾌히 동의하며 카드를 섞었다.
게임을 하다 보니 중국인이 내 반대로 베팅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다른 테이블이 없었기에 나도 소신껏 베팅했다.
가끔은 같은 방향으로 가기도 하면서. 썰렁한 게임이 계속되다 보니 시간은 흘러가는데 돈은 쉽게 불어나지 않았다.
점점 초조해졌다. 그때 카지노 귀신이 나를 도왔는지, 7천 불 정도를 땄다. 시간을 보니 이미 새벽 4시. 서둘러야 했다.
간신히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에 몸을 싣자마자 잠이 들었다. 기내식이고 뭐고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눈을 떠 보니 김포공항이었다.
공항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린 후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니 퀭했고 동공은 풀려 있었다. 옷에서는 담배에 찌든 퀴퀴한 냄새가 났다.
속이 메슥거렸다. 공항 밖의 찬 공기를 들이마시니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이제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즐기려고 간 카지노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간 카지노였다. 이제 나는 직장인이기 전에 도박꾼이 되어 있었다.
7천 불로 우선 카드 빚부터 갚았다.
다행히 연체 기간이 길지 않았고, 돌려막기 덕분이었다.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남은 돈 중 만 불을 더 바꿔서 대출 이자도 조금씩 갚아 나갔다.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도 줄었다. 다음 출장들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1~2천 불 정도는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무역 실적도 좋아 회사에서 표창도 받고 새로운 업무도 맡게 되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카지노에 가서 빨리 돈을 따서 빚을 갚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본질적으로 나의 채무는 시간을 벌었을 뿐, 해결된 것은 거의 없었다. 출장 기회를 잡는 것도 한두 번이지, 더 이상은 나갈 수도 없었다. 다시 앞이 꽉 막혀 버린 것이다.
다시 매일 머릿속으로 묘안을 짜냈다. 그러다 기가 막힌 수가 떠올랐다.
멀쩡한 아내를 중환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3~4달 정도 토요일 근무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으로 결재를 올려 허락을 받았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집 전화번호까지 회사에 알리지 않고 바꿨다. 드디어 거짓말이 시작된 것이다.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거의 들통난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완벽하게 해냈다고 믿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매주 금요일 저녁 4시만 되면 김포공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일요일 비행기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호텔 방도 잡았지만, 시간 맞춰 게임을 하는 나에게는 호텔 방은 필요 없었다. 짐을 풀 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나는 매주 약 34시간 정도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냈다. 과연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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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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